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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 총각과의 우여곡절 사랑이야기
2008-09-17
이혼 후 직장에 다니면서 저녁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가량 시에서 운영하는 야학 교실에 나가 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은 그곳에서였습니다. 
남편도 직장 생활로 바쁜 가운데 있었지만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그곳 선생님들은 모두 자원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가끔 선생님들끼리 회의도 하고 회식도 하다 보니 지금의 남편과 자연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의 처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제게 다가서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의 상처가 너무 크고 아팠기 때문에 재혼은 정말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살 생각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때 총각이었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8 살이나 연하였습니다(그러나 생각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빚도 좀 있었고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 좋은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저에게 늘 적극적이었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제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결혼이라는 것이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전부가 아니라 집안끼리의 만남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처지를 생각하니 그의 부모님께 인정 받을 자신이 도저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결혼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모로 인해서인데 부모가 정상적인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아이한테 충분히 미안했습니다. 이혼한 것만으로 이미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아픈데 거기에 또 다른 상처를 더해 줄 것 같은 생각에 결혼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애 키워 봐야 소용 없다고들 말하지요. 그러니 아빠한테 보내고 팔자 고치라고 말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말들이 너무도 무책임하게 들렸고 분노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을 지금 따질 이유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아이를 끝까지 책임 지는 것은 부모 된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부모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으니까요. 

그런데 누가 내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며 키워 주겠습니까. 저는 그 일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은 자기도 새 아빠한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기도 나의 아들을 친아들 이상으로 사랑하며 키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듣기만 해도 너무 고맙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었지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더욱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며느리를 얻고 싶어하겠습니까. 같기 때문에 더 아프고 피하고 싶지 않을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결혼은 더욱 용기가 안 났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잘해 준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가서 시댁의 눈치를 보며 키울 자신은 정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안쓰러운 내 새끼를 눈치 보며 신경 쓰며 키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남편의 청혼을 계속해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오고 차근차근 저를 설득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조금의 어려움(부모님의 반대)이 있겠지만 우리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간다면 부모님들도 우리를 믿어 주고 편하게 대해 주실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나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 마치 자기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나의 아들은 바로 자기의 어렸을 때 모습 같아서 마음이 찡했노라는 말도 덧붙였지요. 진심으로 나와 내 아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럴 자신이 있다면서. 
끊임없이 설득하고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 저는 차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의지하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나는 그와의 출발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러나 염려했던 대로 시어머님은 강하게 우리 사이를 반대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일단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그와 나의 첫 아이-를 낳게 되었지요.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고 시어머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 아이를 제 아빠에게 보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와 결혼한 이유 가운데, 아이에게 좋은 아빠를 가지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도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위해 결혼했는데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이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요구가 계속되자 저는 정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절망스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니, 저러시다 마실 거야."
남편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강도가 차츰 더해 가자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답니다. 자기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그러니까 책임감, 우리가 처음 결혼을 결심할 때 했던 약속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투로 조용조용히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의 어머니 입장에서 저를 대해 주실 것을 간절하고도 단호하게 말씀드렸나 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이 어머니의 마음에 가 닿았나 봅니다. 어머니가 달라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큰 아이도 친손주처럼 너무 잘 대해 주십니다. 그리고 시댁의 다른 가족들-시동생과 시누이-도 아이에게 참 다정하게 대해 줍니다. 마치 그 아이가 자기들의 친조카나 되는 것처럼 신경을 써 줍니다. 시댁 식구들의 그런 마음 씀씀이는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셋째를 낳았습니다. 이번에도 또 아들이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행여 큰 아이가 소외감이라도 느낄까봐 더 많은 신경을 써 주시더군요. 어쩌다 우리 집에 전화할 때면 꼭 큰 아이를 바꾸라고 해서 다정한 말을 한 마디라도 한 다음이라야 남편과 통화하는 시누이와 시동생. 
명절 때 시댁에 가면 큰 아이를 위해 큰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하나 쯤은 장만해 놓고 기다리시는 시어른들. 시아버님은 큰 아이가 좋아하는 백과사전을 펼쳐 놓고 공부를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큰 아이는 시댁 식구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할아버지를 잘 따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저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것이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지요. 시댁 식구들이 보여 주신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큰 아이가 시어른들을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리 부부의 노력과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남편의 책임감과 확고한 태도가 더 중요한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재혼하는 많은 부부에게 있어서 아이는 가장 중요하며 큰 문제입니다. 특히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지만 시댁 눈치가 보여, 혹은 새 남편이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전 남편에게 아이를 보내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미 사랑은 깨진 것이 아닐까요. 사랑한다는 것이 뭡니까. 서로의 가장 아픈 부분, 가장 아끼는 부분을 공유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부분을 보듬어 주고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야 진정 사랑하는 사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결혼할 때 저는 빚도 좀 있었고 하던 일도 잘 되지 않아 때로는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로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출발 당시 약속했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면을 중시합니다(물론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죠). 그 부분이 결핍되어 가정이 흔들리고 결국에는 깨지기까지 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정말로 사랑해서 출발했다면 어려움이 닥쳐 왔을 때 흔들리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적으로 별로 넉넉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가정이 편안하면 밖의 일도 저절로 풀려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큰 아이는 열 한 살이 되었고 둘째는 세 살, 셋째는 이제 9 개월입니다. 모두 아들입니다. 시어머님은 우스개 소리로 말씀하시지요? 
"얘, 네 배에는 아들만 들었니?" 
그러면서 또 말씀하십니다. 
"키우는 재미는 역시 딸이란다. 딸 하나 더 낳아 보렴."
저는 이제 시부모님이 제 친정 부모님 같이 생각됩니다. 시동생, 시누이도 친동생 같습니다. 그래서 거리감은커녕, 만나면 그저 즐겁고 가진 것이 없어도 뭔가 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합니다. 
이웃 사람들은 시댁 식구들이란 귀찮은 존재가 아니냐고 말합니다. 시댁 식구들과 유난히 가까운 제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받으면 주고 싶어지는 것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게 제가 시댁 식구들에게 배운 지혜입니다. 
지금도 남편은 큰 아이의 머리를 손수 깎아 주고 목욕도 함께 합니다.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저는 이렇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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