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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만난 행복
2008-09-17
나는 지난 날 홍역 같은 아픔을 오랜 시간 겼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 악몽으로부터 깨어나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행복이라는 이름의 뿌듯한 기쁨 속에서 미소를 지어 보게 된다. 그래서 재혼에 성공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 다시는 배우자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확신을 가지게 해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첫 남편.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사람은 뛰어난 외모와 부드러운 매너를 가지고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반했다. 그리고 만난 지 몇 달이 안돼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혼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반대가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마음이 결정된 다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직장 동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일이 무척 후회가 된다. 그 친구는 내게 용기를 내서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언니, 그 사람 있지... 잘 생긴 인물을 내세워 여자를 등치는 사람이래. 나, 언니가 그 사람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참 하기 어려운 말을 나를 위해 해 준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 친구는 매우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가볍게 받아들였다. 
"그거야 그 사람이 너무 잘 생겨서 여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으니까 그랬겠지."
그에게 이미 깊이 빠져 있던 나는 그런 말로 충고를 일축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주위의 우려가 사실로 나타났다. 그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신혼 초부터 거의 매일 외박이었다.

말하기도 창피스럽지만 신혼 여행 간 첫날밤도 나는 신랑 없이 혼자 보내야 했다. 집을 비우는 날이 늘어만 갔고 대신 이상한 사람들이 그를 찾아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이도 다양했다. 젊은 층에서 노인 층까지.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놀라움과 고통이라니.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나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마나 그는 띄엄띄엄 집에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아이가 그를 달라지게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가정에 더욱 충실해질 거라고.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우리 모자로부터 소식을 끊었다. 
그렇게 되자 가장 절박한 문제는 생존에 대한 것이었다. 남편이 보고 싶고 그립고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다달이 들어가는 방세와 생활비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가 다급하고 절실한 문제였다. 아이가 있으니 떼어 놓고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남편이 올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언니를 찾아갔다. 언니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한 입장에 있었다. 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언니는 매달 얼마 간의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언니는 용돈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우리 모자가 생명을 이어가는 목숨 줄이었다. 
그러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그가 초췌한 얼굴로 돌아왔다. 할 말은 많았지만 그는 피곤하다며 자고 싶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당장 자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지쳐 보였다. 일단 그를 재우기로 했다. 그런데 깊이 잠든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그의 수첩을 뒤지고 싶은 유혹이 일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썩 떳떳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에게 비밀이 많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수첩에는 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 가운데 뭔가 예감이 이상한 이름을 골라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잠시 후 그는 잠에서 깨어났고 늘 그랬듯이 이렇다 할 해결책은 없었다. 피로가 풀리자 그는 또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나는 그 번호로 전화를 넣었다. 예상대로 전화 받는 이는 여자였다. 
"나 좀 만나줘요. 만나서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여자에게 일단 만나자고 했다. 그 여자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화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일이라고, 일단 좀 만나자고 사정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내게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바로 찾아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주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처녀였다. 내가 그의 부인이라는 사실에 그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분이 결혼했다는 것 몰랐어요. 총각인 줄만 알고..."
나도 그 여자를 나무랄 마음은 없었다. 
"당신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다 내 남편한테 책임을 묻고 싶군요."
결혼 이후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 온 사람. 그런데 거기에 여자와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다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내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내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때가 한 여름이었는데 왜 그리도 추웠던지.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기도 힘들었다. 
나는 아마 그 때까지 세상에는 모두 정직한 삶들만이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직장 동료가 결혼 전 그에 대해 충고했을 때,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은 이유도 사랑에 눈 멀어서만이 아니라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남편이, 내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렇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니. 
어떻게 집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집에는 올 수 있었다. 이미 그 여자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그이도 집에 돌아왔다.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울거나 욕하지 않았다. 이미 그 사람에게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일까. 사실 집으로 들어오면 그는 수시로 나를 때렸었고 이미 나는 그 수다한 폭력으로 인해 몸도 그리 건강하지 못했다. 
"당신..."
내가 그에게 한 말은 단 한 마디.
"당신은 사람이 낳은 자식이 아니야."
그 말뿐이었다. 그리고는 그의 옷 몇 가지를 주섬주섬 싸 가지고 손에 들려 주었다. 
"나가."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이든 그냥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자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나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에게서는 이제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그를 만나 내가 했던 고생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가 우리가 살던 집 전세를 나 몰래 빼서 카드 빚 갚는 데에 다 날린 적도 있었다. 그 전세, 우리 언니가 얻어 준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장 거리로 내몰린 우리 모자는 어쩔 수 없이 시댁을 찾아갔다. 시댁이라고 우리 모자를 위한 빈 방이 있을 리 없었다. 시 어머니와 우리는 한 방에서 3 년 동안을 지냈다. 그 동안 남편 얼굴은 한번도 보지 못한 채로. 그런데 시 어머니가 딸하고만 의논해서 살던 집을 팔고 새 집으로 이사해 버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나는 다시 시어머니를 찾아갔다. 나를 몰아내려는 의도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달리 살 방도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와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거라는 마음에서였다. 우리가 찾아갈 것을 예상한 시어머니는 이미 방을 모두 세 놓아 버렸다. 지난 번처럼 한 방에서 같이 사는 것도 여의치 않아 아이와 나는 마루에서 일년 동안 생활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별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지나간 시간 동안 나와 아이가 당한 고통은 컸었다. 도저히 그 아픔이 글이나 말로는 표현이 안 되  것을 지금 느낀다. 

도대체 왜 그런 세월을 살아야 했던가. 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부유하게 자라온 나는 정말이지 너무 천진난만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결혼하면 가정을 책임지고 착실한 가장으로만 사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지금 잠깐은 어긋나 있지만 곧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7 년이란 시간 동안 그런 어려운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만든 또 다른 가정의 여자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에 대해서 더 이상의 믿음이나 기대 같은 것은 없었다. 7 년 동안 그런 생활을 미련스럽게 견딘 나를 탓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 날 그렇게 그를 집에서 내 보낸 나는 두 달 후 이혼 신청을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아이에 대한 양육권이었다.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법정에서는 쉽게 양육권을 내게 허락해주었다. 
나의 첫 결혼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후 나는 일곱 살이 된 아들과 둘이서 살았다.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잘못되어 가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보다 물질적인 고통을 견디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당분간 이 집, 저 집으로 맡겨야만 했다. 그러다가 나의 그런 처지를 딱하게 여긴 언니의 도움으로 나는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전 남편이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직, 그리고 성실. 한때 누구나 다 가진 것인 줄 알았고 한번의 상처를 통해 더욱 가치를 재확인한 그 소중한 미덕 말이다. 그는 정말 일밖에 모르는 남자였다. 그는 아내와 이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착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혼을 했을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하지만 어머니와의 갈등을 끝내 이겨내질 못했어요."
아내와의 이혼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짙은 우수가 드리워 보였다. 그 때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그는 여전히 전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사랑까지는 몰라도 미련이 가슴 깊이 간직되어 언제 다시 사랑으로 불 타 오늘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아마 알았다 해도 나는 그것이 무슨 결과를 가져 오는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불성실했던 내 전 남편에 비해 여전히 아내에게 애틋함을 가지고 있는 그가 인간적으로 진실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그가 좋았다. 그 성실함과 진실함이 너무 마음에 끌렸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가까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그의 식구들을 소개 받았다. 그에게는 아이가 셋이었다. 딸 하나에 아들 둘.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거기에 할머니도 아직 살아 계셨다. 모두 일곱 식구였다. 그와 내가 결혼한다고 해도 식구 수는 줄지 않을 거라 했다. 적지 않은 식구에 나와 내 아이들을 더해서 아홉 식구의 대 가족을 그와 내가 부양해야 했고 나에게는 또 그 분들을 보살피며 살림을 해야 하는 의무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조건만으로는 쉽지 않은 출발이엇지만 나는 용기를 냈다. 사랑하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뭐든 다 이겨낼 것 같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마음의 큰 상처까지 안고 살았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그에게 빠져 들 수 있었을까.

그는 내 전 남편과는 다르다. 전 남편이 못 가진 너무나 소중한 것을 그는 가졌다.
오직 그 생각에 그렇게까지 무모한 출발을 결정했던 것 같다. 그는 반듯한 사람이었고 말 한 마디를 해도 정당한 말만 했다. 그에게 단점이 있다면 오직 딸린 식구가 많다는 것. 그것은 그의 단점이 아니라 그가 가진 조건일 뿐이었다. 그 어려운 조건을 내 사랑으로 감싸 주고 싶었다. 그 사람처럼 착한 사람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그는 퇴근하면 어떤 술자리도 마다하고 칼같이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집에 와서는 가족을 위해 온갖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도 나를 잘 따라 주었다. 어른들도 나에게 잘해 주었다. 그의 전처와는 불화가 있었다던데 그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살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 행복했다. 그와의 5 년은 정말 꿈 같은 나날이었다. 나는 지난 날의 상처를 잊고 나의 새로운 행복에 푹 빠져서 지냈다. 
그리고는 다시 어려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운명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행복하지? 네가 누리기에 이 행복은 너무 과분해."
시작은 그의 딸이었다. 처음에는 안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생모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의 생모- 그러니까 그의 전처는 아이들을 진작부터 그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다 잘못했으니 아이들을 봐서라도 용서하고 다시 재결합 하자고. 그러나 시 부모와 갈등을 일으키고 제멋대로 집을 나가 이혼을 청구한 그 여자를 어른들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는 나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채 그와 결혼했었다. 
그의 전처는 아이들을 나 모르게 만나면서 그걸 빌미로 다시 그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살던 순간에도 나 모르는 사이에 우리 행복의 성은 전처에 의해 그렇게 와해되어가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나는 한동안 그걸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다. 아니, 나만 모르고 있었다. 첫 남편과 양상은 다르지만 이번에도 세상을 모르고 어리석었던 사람은 역시 나였다. 

남편이 전처와 나 몰래 만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재결합을 하자고 울며 매달리는 것은 그가 아니고 전처일 뿐이라고 해도 그것으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5 년 동안 이맛살 한번 제대로 찌푸리지 못하고 살던 우리는 전처 일이 표면화 된 이후로 걸 핏 하면 싸웠다. 내가 남편이나 전처 아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대할 때에는 모든 시댁 식구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더니 싸우는 일이 잦아지자 눈치들이 달라졌다. 그러는 가운데 전처 아이들은 울며 사정하는 자기 어머니에게 하나, 둘 씩 태도를 바꿔 갔다.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자 나중에는 시어머니까지 전처와의 갈등이 다 당신 탓이라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나와 내 아이만 외로운 섬으로 고립되어 갔다. 시작할 때 어떤 약속이 오고 갔거나 또 사는 동안 내가 집안을 위해서 무엇을 했든 그 즈음에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가고 있었다.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손을 털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행복인가.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지불했던가. 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갔다. 이미 바늘 방석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도. 
그런데 결정타를 날린 것은 아이들이었다. 제 어머니를 찾아 아이들 셋이 손을 잡고 집을 나가 버렸다. 남편도 시댁 식구들도 그 일로 눈에 보이게 흔들렸고 나도 눈치가 보여서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그 때 손을 털고 일어나야 했는데 나는 여전히 미련스럽게 그 집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는 내 서운함을 주체하지 못해서 남편에게 수시로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마음이 전처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내 마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남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그는 냉랭한 집안 분위기, 나와의 갈등, 아이들의 가출, 그리고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의 매달림에서 마음을 잡지 못했다.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나를 버리는 쪽이었다. 
"이제, 우리 그만 헤어집시다."
상황을 견딜 수 없고 상황이 나를 내모는 쪽으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남자의 진심만은 의심하지 못했다. 끝을 예감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면서 전혀 상상도 못했던 사람처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청천의 벽력이란 말이 새삼 가슴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미안하오. 아이들 엄마를 받아들이기로 했오."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지 말아요. 그건 안돼요. 난 그럴 수 없어요."
그의 입에서 그런 말까지 나온 마당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뭐가 있는가. 울며 매달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의 전처가 울며 매달려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나까지 그렇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내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울며 매달려도 안되면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별 선언 앞에서 나의 자존심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전 남편. 물론 두 번째 남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사람이지만 어쨌든 첫 남편이었고 내 아이의 아버지인 사람. 그의 배신을 확인했을 때, 나는 정말 단호했다. 그의 사과도 받아주지 않고 단 한 마디로 이별을 선언하고 돌아섰다. 그랬던 내가 그 사람에게는 울면서 사정을 했다. 
"당신과 헤어진다면 나 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
"내가 죽는다구요. 내가 죽어도 좋아요?"
극단적인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내가 죽는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그의 입에서는 겨우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흘러 나오지 않았다. 정말 죽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말했다.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가 없군.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죽지 말아요. 나중에 아이들 자란 다음에 다시 만나려면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오."
그가 내게 위로라고 한 말이었다. 그이는 착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가 그렇게 말할 때에는 정말 많은 번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모두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살아 보려고 그렇게 나답지 않게 참고 희생하며 살았고 그걸 행복으로 여겨 그리도 소중하게 생각했건만... 아니, 희생이나 인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그 사랑의 결과가 고작 그런 것인가. 허탈했고 모든 것이 의미 없었다. 죽는 것 이외에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내게는 책임 져야 할 내 아이가 있었으니까. 
이별의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왔다. 위자료나 재산 분할은커녕 갈아 입을 옷 가지 하나 챙기지 않았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그럴 필요성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갈 곳이 없었다. 갈아 입을 옷도 없는데 거처를 마련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 남편과 살 때에는 언니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는 동생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손을 놓아 버렸다. 자리에 누워 버린 나는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다 잊어 버렸다. 
나는 또 한번 실패한 것이다. 한번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참고 노력했는데. 나만 참고 견디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몹시 아프게 했다. 남편이나 시댁 식구나 아이들만이 원망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온 세상으로부터 배신 당한 기분이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마저도 내게서 등을 돌려 버린 것 같았다.
어떤 날은 복수심에 치를 떨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와의 행복했던 날들이 떠올라 그리움이 사무치고... 그렇게 애증의 나날을 보내던 내게 역시 구원은 나의 하나님 한분 이외에는 없었다.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이제서야 제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남을 속이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지요. 저만큼 저로 인해 마음 아팠을 또 다른 사람이 있었을 텐데 저는 기억도 못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죽을 수 없었고 또 뭔가 해야 했던 것이다. 
나의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이고 이제 더는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믿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하나님은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불신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그 때에는 몰랐다. 행여 또 다른 배신의 틈이 다가올까봐 마음을 꼭꼭 여미고 일만 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잘도 흘러 가서 어느 새 그와의 이별도 3 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동생 집에서 나와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아들과의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생이 전화를 했다. 
"언니, 좋은 사람이 있다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겨우 일하며 살아가느라 이별의 상처를 잠재우고 있는데 새로운 만남이라니? 나는 단연 거절이였다. 
"너, 내가 말했지? 다시는 속지 않을 거라고. 근데 왜 이러니?"
"하지만, 언니..."
동생에게 나의 혼처를 권유한 사람은 동생 시댁 쪽 형님이란다.
"그래서?"
"다 언니를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너무 그러면 내 체면이 좀..."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니?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그런 좀 곤란하구나. 네가 너네 형님한테 잘 말씀 드리렴."
"언니, 형님이 벌써 약속까지 잡아 놨단 말이야."
"무슨 일을 그렇게 하니?"
서로 쑥스러울까봐 주변에서 주선해줘야 한다고... 언니가 거절하면 우리 형님 입장도 좀 그래."
"하여튼 난 몰라."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다급해진 동생이 집으로 달려왔다. 
"언니, 그러지 말고 한번 만나 봐라, 응?"
다 나를 위한 일인데 내가 너무 심하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니, 부탁이야. 그냥 나가서 얼굴 보고 차 한잔만 마시고 와. 그러면 되잖아."
"알았어."
나를 위해서 마음 써 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서 내 입으로 거절하고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그와의 만남의 계기였다. 그는 수수한 모습에 눈빛이 외로운 사람이었다. 뭔가 안쓰럽다는 생각에 마음을 끄는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상처 없이 그를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기로 작정한 상태.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를 외면해 버렸다. 너무 눈에 띄게 창 밖에만 시선을 주는 나 때문에 동생이 안절부절이었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이 사람을 대하는 예의가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니, 왜 그래?"
몇 번 탁자 밑으로 꼬집어도 보고 발로도 차 봤던 동생은 결국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이 달라지실 겁니다."
빙그레 웃는 그의 모습이 괜히 능글 맞아 보였다. 자기가 뭔데 그런 뻔뻔스런 소리를 하는가 해서 좋지 않은 내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잠깐만요."
그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며 함께 드시자고 했다. 
"그래, 언니. 나도 배가 고파."
정말인지 아니면 그런 말로 분위기를 만들어 볼 생각인지 동생은 밥 먹고 가자고 나를 만류했다. 거기까지 가서 배고프다는 동생에 식사 준비되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작별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따라 간 곳이 어느 시골집. 정갈하고 아담한 분위기에 이미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너무 조촐하지도 않고 너무 요란하지도 않은 상이었다. 정성이 가득한 것 같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상 차림. 도무지 트집 잡을 것이 없어서 더 심통이 났다. 
"저, 이거 제 연락처입니다."
같이 먹자는 말도 없이 식사를 끝낸 나에게 그가 연락처 적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쪽 연락처도 알고 싶군요."
"제가 연락 드리지요."
나는 겨우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우리를 따라 나오며 정중하게 배웅했으나 나는 도무지 그에게 좋은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사람을 만나다는 사실 자체가 구차하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가 정성껏 적어준 연락처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부터 연락할 마음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차츰 그에 대한 기억도 흐려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쑥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왜 연락 안 하셨어요? 저는 연락 하신다기에 기다렸는데."
그였다. 전화 번호 알려 주기 싫어서 내가 전화 하겠다고 한 말을 곧이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내가 전화 번호를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그가 함부로 먼저 전화 해온 사실이 불쾌했다. 
"기다려도 소식이 없기에 소개해 주신 분께 졸랐죠. 미안합니다."
"..."
"우리 만나지요."
"저는..."
"아, 그러지 말고 만나요. 저를 한번만 더 만나보시면 마음이 달라지실 겁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쉽게 남자를 만날 수는 없었다. 아니,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번거롭고 싫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내게 전화를 해 왔다. 
"만납시다."
나는 결국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날 약속 장소에 나간 것은 소개 하신 분이 어려운 사이에 있는 분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결국 그 때 나가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시는 저에게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런 걸 제가 왜 설명하고 있어야 하는 거죠? 저, 이제 다시는 사람에게 속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저를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 부탁합니다."
그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를 단념시키려면 그 정도로 강력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 주겠다며 나를 달랬다. 그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반복되자 내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내게 잘해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디 속는 셈 치고 한번 만나 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의 데이트 신청에 응하자 그는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했다. 
"공주님."
그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약속을 정하라고 했어도 정작 그 자리에 나올 줄은 몰랐단다. 나를 만난 일이 마치 꿈만 같단다. 그가 그렇게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자 당혹스러운 것은 오히려 나였다. 한번 만나나 보자고 한 것은 아직도 마음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 남은 상태인데 그는 그것마저 허락하질 않았다. 그는 너무도 우리 모자에게 잘해 주었다. 그런 그를 만나면서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도 닫힌 문이 열리며 얼었던 마음이 녹아만 갔다. 
그 무렵 아이는 내게 좀 벅찬 존재가 되었다. 그 아이도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고 남자로서 사람을 이끌어줄 아버지의 존재가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 내 아이에게 그는 아버지 같이 살갑고 인생의 선배로서 든든했고 남자로서 마음 통하는 상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에게 그럴 정도니 그가 나에게 보여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수시로 화를 냈다. 그를 믿고 싶고 그에게로 기울어지는 마음을 단속하다 보면 늘 그랬다. 이유 없이 불쑥불쑥 화를 내는 내게 그는 더욱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늘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그를 보고 동생이 말했다. 
"형부 될 아저씨는 혹시 바보 온달 아니예요?"
"아니, 왜요?"
"저렇게 쌀쌀맞게 구는 여자가 어디가 좋아요? 내가 중매를 서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중매 잘못 선 것 같아 미안하네요."
"미안할 거 없어요. 곧 좋아하게 만들 거니까."
"그거 어려울 텐데."
"아니, 왜요?"
"옛사랑을 못 잊어 하는 여자 마음을 돌리는 게 쉬울까요?"
"그러면 잊게 만들어야죠."
"그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니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음이 넓었고 참을성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어 이혼을 했을까. 아내가 바람이 나서 가출을 했다는 정도는 소개하는 이를 통해서 얼핏 들었는데 저런 남자를 두고 나가는 여자에게는 또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와 좀더 가까워지게 되자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전처와 이혼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마 내가 너무 잘해주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세상에 겁나는 게 없었던 거지요. 나는 무조건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했어요. 모든 것이 너무 풍족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잊었던 것 아닌지."
그의 아내는 동생과 장사한다는 핑계로 그의 재산을 너무 많이 없애버렸단다. 그리고는 면목이 없어 집을 나갔는지 그런 과정에서 좋은 사람이 생겨 그를 떠나버린 건지. 3 년째 아내 없이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3 년 동안이라구요?"
그가 아내와 헤어졌을 때 나도 남편과 헤어졌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도 나도 지난 3 년 동안 사람이 준 상처를 앓고 있었다니 갑자기 그가 내게 선뜻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어느 새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와의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그는 자기 딸을 우리 모자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나보다 아들이 먼저 그의 딸과 친해졌다. 엄마하고 단둘이 외롭게 살다가 예쁜 누나가 생겨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나는 또 한번 용기를 냈다. 다시 한번 더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그를 두고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믿고 싶었다. 그가 그 동안 나와 내 아들에게 보여준 따스함을 잃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의 사랑 없이 다시 쓸쓸하게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결혼했다. 그는 너무 열심히 일했다. 
"무리하지 말아요. 맨날 청춘인가?"
마음으로는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거지만 표현은 늘 차가운 나. 그런 나에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가족이 두 사람 늘었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지."
마음과는 달리 늘 쌀쌀맞게 대하는 나에게 지치지도 않고 그는 늘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 주었다. 그 동안 몸과 마음이 지쳐서인지 여러 가지 잔병들이 많았는데 차츰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의 상처는 물론 몸의 건강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사랑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인가. 이렇게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사람을 버리고 간 그의 전처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 사람이 그를 버리고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내게까지 차례가 돌아올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면서 더욱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상처 받고 눈물 흘리며 다시는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슴 아파 하시며 나를 위해 그를 준비해 두신 것이 아니었는지. 그 동안 흘린 눈물보다 몇 배 더 많은 기쁨의 웃음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나는 또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갈까?"
"가기는 어디로 가?"
"우리 공주님께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거니까 가고 싶은 데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
그는 주중에는 새로 생긴 두 식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다시 나를 위해 가벼운 여행이나 특별한 데이트로 둘만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상처를 잊고 그가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에도 또 엄마, 아빠만 어디 가요?"
"왜?"
"에이, 아빠는 엄마만 좋아하고..."
아이들이 불만스러워(?) 약간의 투정을 부리면 그이는 정색을 하고 말한다. 
"아빠한테는 엄마가 최고야. 너네도 조금 더 자라면 그런 사람 만날 테니까 질투하지 말아라, 알았지?"

나는 말하고 싶다. 행복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리면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위해 준비된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획하신 놀라운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기쁨과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말고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 억울하던 날들은 지나가고 이제 내 앞에는 평화로운 날들이 펼쳐져 있다. 그러는 동안 5 년의 세월이 꿈같이 지나갔다. 사람이란 알 수 없거라 하지만 나는 그를 믿는다. 그리고 그가 변치 않을 것처럼 나 역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싸울 때가 잇다. 마음이 상할 때도 잇지만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우리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물론 노력도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지나가다가 예쁜 옷을 보면 사들고 온다.
"이것 좀 입어봐."
그럴 때의 그는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 같다. 
"근데 이 디자인이 당신한테..."
어떤 디자인이 더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 이리저이 따져 보고 다음에는 그에 맞는 옷을 또 사 들고 온다. 
새로 생긴 두 식구를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돌아오는 그를 위해 나는 오늘도 정성으로 밥상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면 반주 한 병을 놓고 마주 앉는다. 
"자, 우리 예쁜 공주님 파이팅!"
그의 건배는 늘 나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평강 공주(상처 받고 가난한)와 온달(너무 많은 것을 가진)의 만남인지 모르겠다. 때로 과거를 까맣게 잊고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내게 실망할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단순한 인간이었던가? 하면서. 다 행복해서 해 보는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신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에게도 감사한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지만 나의 재혼은 성공적인 것이라고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아직도 그가 사다 준 장미 꽃이 시들지 않고 작은 서랍장 위에 꽂혀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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